참여정부 1년 진보 우세 속 보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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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10돌 기념 ‘국민 이념 성향 추적조사’… 통념과 달리 진보적 한국인이 보수보다 많아
우리 사회는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 참여정부 들어 보수파와 진보파는 어떤 변화를 보이는가. 창간 10돌을 맞이해 국민 이념 성향을 조사했다. ‘대한민국은 보수사회’라는 통념과 달리 진보가 우세를 보인다. 그러나 참여정부 이후 보수파가 약진했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우리나라 국민들은 ‘보수적인 사람이 많다’는 통설과 달리, 실제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견해를 조사한 결과 진보 성향을 지닌 사람이 좀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2년의 같은 조사에 비교할 때는 보수적 이념 성향을 지닌 사람이 늘고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다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한겨레21>이 창간 10돌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소장 이남영 숙명여대 정치학과 교수)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 이념 성향 추적조사’에서 밝혀졌다. <한겨레21>은 대통령 선거와 노무현 정부의 출범 등 2년간의 정치·사회적 사건을 통해 국민 이념 성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밝히기 위해 변화추이 조사를 실시했다.

‘보수 지배사회 통설’ 성립 안 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본인의 이념적 성향이 다음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실제 사회적 행동에서 나타나는 이념 성향과 별개로, 본인들이 주관적으로 ‘나는 보수적이야’ 또는 ‘나는 진보적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매우 보수적’ 6.5%, ‘다소 보수적’ 32.3%로 범보수 성향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의 비율이 38.8%로 나타났다. 자신이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37.8%, ‘다소 진보적’은 20.0%, ‘매우 진보적’은 3.5%로 범진보 성향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이 23.5%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나는 보수적이야’라고 자평하는 사람이 ‘나는 진보적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많다는 것으로, ‘한국인들은 대체로 보수적이야’ 또는 ‘한국 사회는 보수적인 사회야’라고 믿는 통설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21-KSDC 공동조사’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가치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검증한 바에 따르면 ‘일관되게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27.9%, ‘일관되게 보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22.0%로, ‘진보적인 국민’의 비율이 오히려 우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한국 사회는 보수 우위’라는 통설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사회적 문제에 진보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막연한 ‘보수 우위 신화’ 탓에 자신이 진보적임을 옳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을 수 있음이 드러났다.

‘한겨레21-KSDC 공동조사’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태도 검증을 위해 모두 16개의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고 태도를 물었으며, 이 가운데 △약자 배려 △국가안보의 범주에 해당하는 4개 문항을 진보·보수를 가르는 척도로 채택했다. 이번 조사에서 밝혀낸 ‘일관된 보수 25.5%’ ‘일관된 진보 24.6%’는 이들 4개 문항의 응답에 대한 ‘요인분석’(사회조사 분석기법의 하나로, 조사방법 소개글에서 별도로 설명함)을 통해 일관된 상관관계가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그 밖에 50.2%의 응답자는 이를테면 고교 평준화를 지지하는 동시에, 분배 강화에는 반대하는 것으로 응답함으로써 진보·보수 어느 한쪽에 속하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일관성 없이 ‘뒤섞인’ 이념 성향을 지닌 것으로 판단됐다.

2002년에 비해 보수가 늘고 진보가 줄었다 2002년 6월의 같은 조사에서 31.3%이던 ‘일관된 진보’는 이번에 27.9%로 3.4% 줄었다. 반면에 2년 전 17.4%이던 ‘일관된 보수’가 이번에는 22.0%로 4.6% 늘었다.

그 배경은 일차적으로 2년 전 ‘진보의 질풍노도’ 시대가 펼쳐졌다가 그 뒤 ‘보수의 반격’이 시작됐으며, 이런 가운데 진보·보수 두 진영의 팽팽한 헤게모니 대결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한겨레-KSDC 공동조사’가 처음 실시된 2002년 6월은 정치적으로 볼 때 보수 야당과 보수언론의 집중 공세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바람’이 거세게 일어났던 무렵이었다. 또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면서 ‘붉은 악마’의 깃발이 전국을 휘감는 등 한국 사회의 영파워가 강렬하게 분출되고 있었다. 이어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나면서 전통적인 ‘반미=위험’ 콤플렉스가 무력화하는 사회적 변화도 진행됐다. 될 것 같지 않던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도 그러한 시대적 물결의 소산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반면에 2004년 2월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보수진영의 일대 반격에 따라 이념 대립이 격화한 상황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여야간 극한 대립은 존재했지만 당시에는 주로 부패 또는 편중인사 문제가 쟁점이 된 반면에, 대통령이 ‘친노동자적’이라거나 ‘반미·급진적’이라는 공격이 일상화한 것은 어디까지나 노무현 정부 들어선 뒤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 후보의 대선 승리 과정에서 강한 응집력을 발휘했던 진보가 ‘긴장의 이완’ 단계로 들어간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의 국정수행을 지켜보면서 진보가 분열한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형준 박사(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는 “진보·보수 인구 비율의 2년간 변화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보·보수 단체가 3·1절 기념식을 따로 하면서 제각기 다른 이념적 깃발을 들고 나오는 것은 과거에 없던 양상”이라며 “이런 과정에서 보수진영이 위기의식 속에서 나름대로 이념적 결집을 모색하는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진보·보수 구분의 척도로 채택된 문항 가운데 우선 ‘체제와 상관없이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가능한 한 많이 해야 한다’의 응답은 찬성 56.8%, 반대 43.1%(이하 모두 ‘전적으로’와 ‘대체로’를 한데 묶은 것임)로 나타났다. 2년 전 조사에 비해선 찬성 비율이 다소 줄었다.

‘정부는 세금을 더 거둬서라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문항에서는 찬성 61.9%, 반대 38.0%로 나타났다. 2년 전 같은 조사와 비교할 때 사회복지 확대 지지 의견이 조금 늘었다.

‘한반도 안보 문제와 관련해 우리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방인 미국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 낫다’는 문항에는 찬성 30.2%, 반대 69.8%로 반대 의견이 훨씬 우세했다. 그러나 2년 전 조사에 비해선 ‘미국을 따르자’는 의견이 10.2% 늘어난 점이 눈길을 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자주외교 논쟁이 격화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자주외교 지지 의견이 우세하지만, ‘미국을 따르자’는 쪽도 나름대로 세를 결집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해 어느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서는 ‘절대 폐지해선 안 된다’ 10.6%, ‘북한의 변화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38.0%, ‘북한의 변화와 관계없이 부분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40.8%, ‘전면 폐지해야 한다’ 10.6%로 조사됐다.

국가적 리더십 강화 목소리 높다 ‘한겨레21-KSDC 공동조사’에서는 진보·보수와 관계없는 일반 사회적 가치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왔다.

우선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국가 지도자는 소신대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문항에 찬성이 78.0%로 반대 28.1%를 압도했다. 이 문항에는 2년 전에도 찬성 의견이 우세했는데 이번에 그 비율이 한층 증가했다.

이런 결과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 대통령의 국정평가 지지율이 취임 1년여 만에 급락하는 등 국가적 리더십의 약화를 반영하는 측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김형준 박사는 “정부의 약화 흐름의 반작용으로, 노 대통령에게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강력한 개혁적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을 기대하는 요구가 증가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회의 잘못된 점은 무리가 따르더라도 빠르게 고쳐나가야 한다’는 문항에 찬성 88.1%, 반대 11.9%로 나타났다. 2년 전과 찬반 분포가 거의 비슷했다. ‘정당한 목적을 가진 시위라도 사회 규범을 해치면 규제해야 한다’는 물음에는 찬성 82.7%, 반대 17.3%로 조사됐으며 역시 2년 전과 찬반 분포는 비슷했다. 나름의 명분을 내세운 사회적 소수자의 시위라 하더라도 방법이 사회질서를 해칠 경우 국민여론은 관대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성장주의 가치 중시하며, 표현의 자유 확대 기대 ‘정부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나눠주는 일보다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문항에 찬성 72.9%, 반대 27.1%로 응답이 갈렸다. 이 문항에는 2년 전에도 찬성 의견이 우세했는데 찬반 불균형이 더 심화됐다. 2년 전에 비해 경제사정이 더욱 나빠진 가운데 재계 등이 주장하는 ‘경제성장 우선론’이 한층 더 강력하게 부각된 결과로 해석된다.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영화나 소설작품 등을 검열해야 한다’는 물음에는 찬성 44.8%, 반대 55.2%로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2년 전에 비해 반대 의견이 좀더 우세해졌다. 이 결과는 주인공들이 적기가를 부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영화 <실미도>가 1천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같다. 즉, 국민들이 과거의 ‘냉전 콤플렉스’를 급속히 벗어던지면서 좀더 분방하게 창의성이 발휘되는 시대를 기대한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공무원도 일반 근로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질문에는 찬성 48.3%, 반대 51.6%로 응답이 엇갈렸다. 2년 전에 비해선 공무원 노조 찬성 의견이 다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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