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맞아, 문제는 경제야", 그런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맞아, 문제는 경제야", 그런데….

[2007 대선, 기로에 선 한국정치]서둘러 찾아온 손님, 경제①

'못살겠다. 갈아보자(1956년 3대 대선)' 이래 경제, 즉 '먹고 사는 문제'가 빠진 대선은 없었다. 71년 대선 당시 박정희 후보가 내건 구호는 '안정 속의 성장'이었다. 92년 대선에선 정주영 후보가 처음으로 '경제대통령' 컨셉으로 도전장을 던졌으며 IMF 광풍이 휩쓴 97년 대선에서도 이른바 'DJ노믹스'가 나왔다.

그런데도 유난히 2007년 대선을 '처음 맞는 경제선거'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으로 대표되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현실에 착목한 분석부터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선후보가 두 명(이명박, 문국현)이나 뛰고 있는 정치적 현상에 주목한 이들도 여럿 있다.

어떤 분석이 더 정확한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선이라는 폭발적인 공간이 열렸고, 국민들은 이미 '경제선거'라는 간판이 붙은 링 위의 싸움을 관람하러 입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제대로 된 경제선거를 치러내느냐는 올 대선에서 더욱 중요해진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과 '유사 한나라당'의 경제선거?
▲ '경제 대통령'을 앞세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대선 후보 첫 행보로 광장시장을 방문해 '경제를 챙기는' 모습을 연출했다. ⓒ연합.

통상 경제선거는 각 세력이 세금과 재정은 물론이고 보육, 교육 등 관련 문제까지 엮이는 촘촘한 그물망 정책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에 의해 차기 정부가 선출되는 과정이다. 몇 가지 단출한 정치 갈등적 이슈로 온 국민을 줄 세우는 선거에 비해 선진화된 형태라는 것.

KDI 유종일 교수는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이슈가 경제인 것은 분명하다"며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사교육비, 부동산 문제, 노동시장과 금융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우리 경제의 현실을 어떤 정책수단으로 고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경제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복경 국회 입법조사연구관은 "다양한 정책조합을 제시할 수 있는 똑똑한 정치세력과 정치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5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선거라는 기회를 통해 전국민이 학습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권자들도 경제이슈에 반응할 채비가 돼 있다. 지난 7월 서울신문과 KSDC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 사회, 정치외교 세 분야 중에서 무려 82%의 유권자들이 경제 분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연구관은 "우리에겐 한걸음 빨리 찾아온 경제선거"라고 했다.

우리 선거사를 돌이켜볼 때 명실상부하게 경제선거라고 이름 붙일만한 선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군사정권 집권기는 물론이고 87년 직선제 쟁취 이후에도 분출되는 형식적 민주화 요구를 수렴하는 데 우선의 과제가 놓였던 탓이다.

특히 97년 IMF라는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경제노선에 근거한 정치적 균열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지배한 97년 선거 지형에서 IMF의 위기와 극복 담론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한 판단을 하기에는 일정한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표면적으로는 보수와 개혁을 표방하는 두 당이 여야를 바꾸긴 했으나, 기실 그 알맹이는 영·호남 지역주의와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에 의한 구분이었을 따름이다. 영국의 보수당-노동당, 미국의 공화당-민주당의 대치처럼 경제 노선에 근거한 양당제의 착근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첫 단추가 이렇게 꿰어진 소위 '민주정부'에서 경제노선에서 명료해진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정치구조의 안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IMF 위기 하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세계화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방향타를 잡았고,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추진으로 대표되듯 똑같은 정책기조를 보다 확대 적용했다.

이에 따라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과의 본질적 차이를 구분하는 게 소위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며 무의미한 일이 돼버렸다.

이명박이 가진 것

이런 가운데 2007년 대선 국면에선 한반도 냉전체제마저 급속히 붕괴되는 불가역적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보수세력과 개혁세력 사이의 거의 유일한 차이점이었던 대북이슈마저 희석됐다.

보수진영이 제기한 '잃어버린 10년'은 이런 배경에서 파급력을 가졌다. 민주정부 10년간 확대된 양극화의 정책적 책임은 이를 집행한 권력과 세력에게 돌아갔다. 이는 곧 무능한 '민주세력'보다는 부패해도 돈 벌이 만큼은 유능할 것 같은 CEO(최고경영자) 출신 대선후보에게 50% 이상의 시선이 꽂혔다.

이런 배경을 양력으로 한 이명박 후보의 고공행진은 제어장치가 사실상 없어 보인다. 모든 상대 후보 진영이, 심지어 당내 경선에서 맞붙었던 박근혜 전 대표마저 이 후보의 경제정책을 '개발연대 토목경제'라며 할퀴고 때렸음에도 그는 건재해 있다. 이를 침체의 늪에 빠진 범여권에 대한 '상대적 우위'로만 볼 수는 없다.

창원대 안병진 교수는 '이명박의 경제 대항마'를 자처하는 문국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지식인이다. 그조차 "이명박이 우리의 미래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경제 선거 프레임'에 대한 준비가 가장 잘 돼 있는 쪽은 이명박 후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과거와 달리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안팎에서 새로운 보수의 상에 대한 대단히 많이 논의됐다"며 "질적으로 새로운 보수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점이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아무리 천민 자본주의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명박 후보는 그것을 내면화 한 사람이다. 수십년 동안 갖춰온 철학이란 것은 간단한 게 아니다"고 경계했다.

가장 구체화된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한 쪽도 현재로선 이명박 후보다. 보수신문마저 철회를 종용하는 한반도 대운하와 '7·4·7(7% 성장, 4만달러, 세계 7위 강국)'이 유난히 도드라져 있지만, 그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유류세 인하 등을 골자로 12조6000억 원에 달하는 감세 정책, 노동시장 유연화 등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틈틈이 정책화된 형태로 내놓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산분리에 대한 폐지 내지 단계적 재검토 입장도 그의 친기업적인 경제관에서 나왔다. 성장을 통한 분배 강화 방안을 담은 '2008년 신발전체제'의 줄거리도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 측은 10여 차례의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내달 10일 께 공식적인 대선공약집을 내놓을 예정이다.

진척 정도로만 봐선 당 대선후보 선출을 거쳐 후보 단일화에 이르기까지 남은 갈 길이 먼 범여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의 경우 '이명박 때리기' 외에 이명박과 차별화된 정작 자신만의 경제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없다.

손학규 후보는 '글로벌 첨단경제'를 내세워 '토목공사 이명박'과 차별화를 강조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전면적 수용과 성장우선주의, 친기업 성향의 골격이 이 후보와 구별되지 않는다. 평화와 경제를 접목시킨 정동영, 이해찬 후보의 강조점 역시 무늬만 다를 뿐 '반(反)이명박'을 위한 슬로건 수준이거나 노무현 정부의 그것보다 빼어난 대목이 별로 없다.

옳건 그르건 경제철학과 정책, 구체적인 실현 수단에 이르기까지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 이명박 후보와 맞상대할 콘텐츠라고 하기엔 턱이 없어 보인다.

과거로 향한 경제선거는 허구

이처럼 카운터파트가 없는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지속되는 한 '반쪽짜리 경제선거'를 피해갈 길이 없다.

낮은 충성도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과거를 돌아본 선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가 경제문제를 잘 해결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심리의 근저에는 우선 먹고 사는 문제에 무능했던 지난 10년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 즉 회고투표의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 후보가 자신의 도덕성 논란에 대응하며 내뱉은 말처럼 "그릇을 깨고 손을 베이면서도" 일궈낸 70~80년대 기업가 시절의 성과가 호의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반면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쪽은 '이명박의 시대'가 디스토피아의 도래인 양 격렬하게 저항할지라도 '다른 미래'를 선택할 여지가 현실적으로 부재한 탓에 체념적 투표 내지 회피 쪽으로 산개할 경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어쩌면 우리의 이런 현실은 지미 카터 집권기의 침체된 경제 상황에서 '감세를 통한 성장' 공약을 전면에 내세워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과 유사점이 적지 않다. 마거릿 대처와 함께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신봉자라고 할 만한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다.

그 결과 복지예산은 대폭 삭감됐고 실업률은 카터 행정부 때보다 높아진 반면,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낮아졌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급기야 레이건 집권 2기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면서 다우지수가 폭락한 소위 '블랙 먼데이'가 발생했다.

그러나 우리의 처지가 당시의 미국보다 더 비관적인 건 84년 레이건의 재선 도전 당시 재정적자를 줄여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한 윌터 먼데일 같은 레이건의 대항마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