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대선을 앞두고 활발한 움직임이 예상되는 여성계의 '여성표 전략'에 대해 심층 기획보도합니다. 이번 기획은 총 3회 분량으로 '사상 최초·최대규모 여성유권자연대 뜬다'라는 제목으로 이미 첫회분이 기사화됐고 이번이 두번째 기사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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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오마이뉴스 |
“20·30대 여성 유권자를 잡아라.”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의 여성 관련 부서에 내려진 특명이다.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찍는 후보를 찍는다’, ‘여성 후보는 여성을 찍지 않는다’ 등의 말들이 나돌 정도로 소극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던 1700만 여성표가 이제는 후보들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선거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각 후보 진영이 ‘20-30대 여성표’를 집중공략 대상으로 삼은 것은 40-50대 여성표의 경우 대부분 성향이 뚜렷한 고정표로 굳어졌지만 젊은 여성들은 지지 성향이 유동적이고, 규모로 볼 때 당락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10월13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서울 신촌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여대생 30여명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간담회를 연 것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20-30대 여성표 공략을 위한 선거캠프의 이벤트 행사였다.
또 지난 8월 <대한매일>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9.3%를 얻어 1위를 했던 정몽준 대선 후보가 같은 기관에서 실시한 9월 여론조사에서 26.6%의 지지율을 얻어 2위로 내려앉았는데 그 이유가 정 후보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20·30대의 여성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이제는 후보들도 50%가 넘는 여성표를 잡기 위해 장밋빛 여성정책 공약을 뛰어넘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각 후보의 여성표를 책임져야 할 임무를 지닌 각 후보 진영의 여성국 담당자들도 여성표가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고, 인터넷의 발달로 후보에 대한 양질의 정보가 여성들에게도 제공되기 때문에 더 이상 여성들이 종속적인 투표행태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여성표는 없다’는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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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유세장을 찾은 여성 유권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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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오마이뉴스 권우성 |
여성들이 독자적인 투표를 한다고 했을 때, 이들은 학연과 지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만큼 후보 진영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여성국 담당자들은 이들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의 변화를 별로 보이지 않는 40·50대 여성들보다 비교적 유동적인 20·3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다른 후보에 비해 20·30대의 여성들의 지지도가 낮게 나타나는 이회창 후보 쪽은 더욱 적극적이다. 김금래 한나라당 여성국장은 “이회창 후보가 민생 투어를 시작할 때 초기에 보육 시설과 임대주택을 방문한 것은 20·30대 여성을 겨냥한 움직임이었다”며 한나라당이 20·30대 여성표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20·30대 여성에게 높은 지지율을 받지 못하는 것은 ‘딱딱한’ 이미지가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하고 있었다. 이 후보의 ‘대쪽‘ 이미지는 40대 이상의 여성들에게는 안정감을 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만, 20·30대 여성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고 고루한’ 후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40대 이상 여성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표를 얻기 위해 이 후보 측은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가령 ‘아기를 등에 업고 책 보는 이 후보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해 이 후보의 ‘따뜻한’ 면을 알려간다든지, 머리에 두건과 헤드셋을 끼고 춤을 추고 있는 ‘활발한’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기존의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시켜 나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또 최근에는 정당 최초로 30대 여성인 조윤선 변호사를 선대위 대변인으로 전격 영입하고, 나경원 정책특보 등 여성 보좌진을 크게 늘리는 등 여성표를 염두에 둔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머리에 두건과 헤드셋 낀 이 후보
| | | 여성은 여성을 뽑지 않는다? 이젠 옛말 | | | [여성표 분석] 유권자 표심, 어디로 가나 | | |
여성은 1948년 제헌헌법에 의해 참정권을 획득한 뒤 15번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2001년 한국여성개발원의 ‘해방후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현황과 향후과제’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선거(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을 전부 포함)에서 남성 유권자보다 여성 유권자가 다소 많았고 반대로 투표율은 여성이 다소 낮았다는 것 외에는 남녀 유권자의 유의미한 성별 투표 성향차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영란 숙명여대 법대 교수의 87년 대선에 대한 연구에서 후보 결정에 가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여성은 37.2%로, 당시 같은 응답을 한 남성(17.8%)의 2배에 가깝다.
다행히도 여성의 ‘투표 가족의존도’는 이후 선거에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제16대 총선 이후 실시한 한국여성개발원의 같은 조사에서 ‘가족구성원의 영향’을 받은 여성비율을 30%(남성은 24.7%)로 나타났다. 이중 “가족과 상의는 했지만 당초 계획대로 투표했다”는 여성도 80%에 달했다.
여성의 ‘가족의존 투표’ 감소추세
‘여성은 여성을 찍지 않는다’. 이런 기존의 인식은 근거 없는 편견에 불과하다. 지난 2000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후보를 지지했다는 여성응답자는 31%. 남성(23.9%)에 비해 높은 수치다.
그러나 여성유권자 역시 ‘여성은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전통적 성역할 가치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지난 99년의 한 연구에서는 여성응답자 33%(남성은 43%)가 “여성이 공직을 맡으면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여성의 가장 적합한 역할은 가정주부”이며 “아내가 남편보다 수입이 많으면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다”는 여성유권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올해 초 김현희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는 여성의 경험과 정치의식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에 따르면 취업 경험이 있는 여성유권자가 여성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정도가 그렇지 않은 여성유권자에 비해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층 이하 여성들이 여성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정도는 자신을 중산층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에 비해 1.5배 높았다. 이같은 결과는 같은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차별 경험 유무에 따라 다른 정치의식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원홍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여성단체들이 여성유권자의 의식교육을 강화하고 각 후보들에게 여성정책을 요구하는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박효원 기자 | | | | |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사정이 정반대다. 노 후보가 20·30대 여성들에게는 타 후보에 비해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40대 이상의 여성들에게는 10% 내외의 지지율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이회창 후보에게 고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어 여성 지지율 높이기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유승희 민주당 여성국장은 “과거 70년대에 생겨난 새마을운동과 같은 준관변조직에 의해 이미 지역사회 여성 유권자들의 표가 조직화돼 있기 때문에 그 벽을 깬다는 것이 쉽지 않다”며 40대 이상의 여성들의 표를 모으려고 힘쓰기보다는 20·30대 여성의 표를 더 많이 가져오는데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민주당이 20·30대 젊은 여성으로부터 더욱 많은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세워놓고 있는 전략은 두 가지. 20대 여성들에게는 ‘go to the polls(투표장에 갑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30·40대 주부에게는 ‘부패척결의 주역으로 나서 달라’고 호소한다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당 쪽은 노 후보의 주 지지세력이면서 가장 투표율이 낮은 20대를 투표장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하고 중앙선관위에 ‘투표자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제안을 할 예정이다.
또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30·40대 주부에게 “부정부패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자식 군대 안 보내고, 해외에서 원정출산한 후보에게는 표를 던지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자”고 권유할 예정이다.
노무현의 ‘go to the polls’ 캠페인
대중의 지지기반이 낮은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측은 연령대별로 접근하기보다 여성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시켜 나갈 구상을 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발전노조 가족들,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의료노동자들, 파주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과 올해 함께 투쟁을 벌였기 때문에 이들을 주축으로 ‘민주노동당이 진정 여성을 위하는 당’이라는 인식을 심어나갈 계획이다. 최근 경희의료원에서 근무하던 83명이 파업이 종결된 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한 사례처럼 파업 현장에서 확실한 지지자를 만들어 낸다는 전략이다.
네 후보 가운데 여성으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몽준 후보 진영은 아직 조직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여성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를 지지하던 젊은 여성의 표가 노 후보와 이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도 젊은 여성에게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는 것을 후보 진영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신승혜 여성위원회 팀장은 “최근 정 후보에게 등을 돌린 젊은 여성들도 정 후보가 젊은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내 놓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 | | "사이버 홍보로 젊은 여대생 표 잡겠다" | | | [인터뷰] 김정숙 한나라당 최고위원 | | |
| | ▲김정숙 의원 | | - 이회창 후보가 20·30대 여성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여성 유권자들은 남성보다 감정적인 요소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회창 후보가 타 후보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세대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동안 한나라당이 보수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당에 대한 기호일 수는 있지만 대선 국면에서 이 후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 젊은 여성들의 표를 잡기 위한 묘책은 있나.
“젊은 여대생들을 잡기 위해 사이버 상의 홍보운동에 주력할 것이고, 임대주택 정책· 공보육·모성보호 비용 국가지원 확대 등의 젊은 여성을 위한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겠다.”
- 한나라당에서 여성의원에 대한 배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른 당에 비해 여성의원들의 정치참여가 저조했지만 올해부터는 달라졌다. 당직의 30%를 여성에게 준다는 내용이 당헌에 명시돼 있고, 타당에 비해 여성최고위원의 수가 1명 더 많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배려가 늘어났다.
또 이번 대선 공약 가운데 지역구에 30%, 비례대표에 70% 정도를 여성에게 할당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갈 예정이다.”
- 한인옥 여사의 이미지가 여성유권자 표심에 어떻게 작용할 것으로 보나.
“자체 내부조사 결과 한 여사가 후보 부인 가운데 여성유권자들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전문적인 여성보다는 ‘자상한 어머니상’이 여성들에게 더욱 어필을 하기 때문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임경환 기자 | | | | |
| | | "40·50대 중년여성 움직일 복안 마련 중" | | | [인터뷰] 김희선 민주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 | |
- 노무현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여성표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최근에 20대 여성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고, 각 연령층에서 골고루 상승하고 있다. 그동안 노 후보의 개혁적이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부분은 많이 드러난 반면, 인간적인 면이 잘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 노 후보의 여성지지율을 높이는 묘안을 가지고 있나.
“노 후보는 ‘국가가 50%의 보육 비용을 책임지겠다, 50만∼70만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여성의 취업이 손쉬워지도록 하겠다, 호주제 폐지하겠다’ 등의 진보적인 여성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노 후보와 권양숙 여사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공개되면 여성들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40대 이상 여성들 사이에서 이회창 지지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40대 이상 여성들 가운데 이회창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20·30대 여성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으로 표심을 이끌어내고, 40대 이상 여성들에게는 민주당 당원들이 직접 방문해 설득 작업을 하는 이원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면 여성표를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번 대선에서 여성표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넓어지고 길어지면서 여성들의 정치적 의식이 상당히 발전했다. 고학력자들에게 노 후보가 인기가 있는 것을 보면 정치적 의식이 발전한 여성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 임경환 기자 | | | | |
임경환/권박효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