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28주년 | 한국사회 민주주의 현주소 진단

"민주주의 위기론은 '과장' … 시민은 변했는데 정치가 안 변해"

2015-06-10 10:44:46 게재

투표율 하락세 멈춰, 20대 보수화도 사실과 달라 … 정당정치 변화에 민주주의 진퇴 갈린다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28년째,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낮은 투표율,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 정치 및 경제의 양극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시민의 피땀으로 꽃피운 민주주의가 과연 다시 퇴보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속단을 경계한다. 위기론은 6월항쟁 이후 달라진 시민에 발맞추지 못하는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선거 참여율 '바닥쳤다' =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주최로 '현 단계 한국의 민주주의, 진단과 과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정상호 서원대(사회교육·정치)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담론이 대부분 부정확한 진단이거나 과장된 것"이라며 민주주의 위기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 번째로 지적된 것은 선거참여율 하락 '착시효과'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참여율의 하락은 위기론의 가장 주된 근거로 꼽혀왔다. OECD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투표율은 46%로 미국(48%) 바로 아래다. OECD 회원국 평균인 70%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1980년~2011년 선거 투표율 하락 정도도 32%로 OECD 평균(-11%)의 3배 가까이 된다.

그러나 이는 시기 효과를 간과한 과장된 주장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1987년 89.2%를 기록한 대선 투표율은 2007년 63.0%로 바닥을 친 후 2012년 18대 대선에서 75.8%로 다시 반등했다. 총선 투표율 역시 1988년 75.8%에서 2008년 46.1%까지 감소세를 보이다 2012년 다시 54.2%로 상승했으며 지방선거의 경우 1995년 68.4%에서 2002년 48.9%까지 떨어지다 2006년 51.6%, 2010년 54.5%, 지난해 56.8%로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 교수는 "지난 20~30년간 투표율 하락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고 특히 민주화 이행에서 공고화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 생기는 일반적 현상"이라며 "한국의 경우 바닥을 쳤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분석했다.

◆20대 보수화? 투표 보면 아니다 = 투표율 하락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신세대의 보수화·탈정치화 비판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흔히 신세대의 정치 무관심을 비판할 때 거론되는 것은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이다. 모든 세대 중 가장 낮은 20대의 투표율이 전체 투표율의 급속한 저하를 가져왔다는 분석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 역시 최근 투표성향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2007년 대선 당시 46.6%에 불과했던 20대 투표율은 2012년 18대 대선당시 68.5%로 현격히 증가, 총투표율을 63.0%에서 75.8%로 끌어올리는 1등 공신이 됐다. 30대 투표율 역시 2007년 55.1%에서 2012년 70.0%로 치솟아 총투표율을 견인했다.

'20대 보수화' 도 마찬가지로 투표율을 보면 섣부른 일반화다. 2002년 이후 역대 선거에서 보수진영 대통령이 20대의 과반 지지를 받은 적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실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는 2002년 당시 59.%가 노무현 후보에 표를 던졌고 이회창 후보를 택한 비율은 34.9%에 불과했다. 2012년 대선 역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65.8%, 박근혜 후보지지 비율이 33.78%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같은 성향은 30대도 마찬가지였다.

정 교수는 "신세대가 (보수화와 더불어)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경향을 비판받기도 하는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치분포를 조사한 결과 탈물질주의 경향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민이 아니라 정당정치가 문제" = 천안함 진실논란, NLL 논란,·국정원 정치개입 논란 등 각종 갈등과 대립으로 드러나는 '정치적 양극화'도 민주주의 위기론을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정당 뿐만 아니라 '조중동 대 한겨레·경향' '오늘의 유머 대 일베(일간베스트)' '참여연대 대 바른사회시민회의'처럼 유권자 수준에서도 이념적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

그러나 유권자의 정치적 양극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큼 심화되지 않다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2004년부터 2012까지 유권자의 이념적 거리를 조사한 결과 새누리(한나라)당 지지 유권자와 민주(열린우리)당 지지 유권자의 (이념적 거리) 점수차이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2.95점으로 가장 컸으며 이후 17대 대선(2007년) 때 2.07점, 18대 총선(2008년) 때 2.48점, 18대 대선(2012년) 때 2.4점으로 오히려 좁아졌다.

정 교수는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정당 양극화는 심화된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라며 "의원들과 달리 유권자들은 주요 정책 선호에 있어 중도 보수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가 보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구시대적 정당정치가 달라진 시민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일컬어져 왔던 현상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침해는 아니다"라며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이 산업화 사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민'이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율적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돈·권력·생존보다 행복과 삶의 질 같은 '탈물질적' 가치를 중요시하게 됐다며, 반면 정당정치는 "위로부터 동원하고 관료적 규율에 근거한" 구시대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수정당은 기존 방식대로 투표중심의 기존 시민들과 결합하고 있지만 진보정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새롭게 등장한 시민 유권자와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정당정치)가 이들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에 따라 퇴보와 진전에 기로에 서 있다"고 밝혔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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