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정계개편 고건 폭탄‘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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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 총리 ‘정치세력화’ 낮은 포복… 내년 6월 지방선거 후 변수에 주목



고건발(發) 정계개편. 차기대권주자에 대한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정계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하지만 9월 초까지만 해도 이 시한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폭탄의 실체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추석 연휴를 즈음해서다.

고 전 총리는 지난 9월 12일 중부권 신당의 싱크탱크인 피플퍼스트아카데미(PFA) 창립 심포지엄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하는 신당 창당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고 전 총리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사진 촬영을 위해 손을 맞잡기도 했다.

이날 행사 자체는 정치적으로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DJ 정권의 집권당인 민주당은 과거의 위세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당세가 위축되어 있다. 신당도 마찬가지다. 신당에 대한 비전과 전망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정치권을 긴장시킨 것은 고 전 총리의 참석이었다. ‘고건발 정계개편’이라는 시한폭탄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였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 등은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도 ‘고건 영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당 당내세력은 ‘친고건파’와 ‘친한화갑파’로 나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실체도 없는 소용돌이 개편 정국

이처럼 정치권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고 전 총리에 우호적인 세력 내부에서는 ‘국민후보 성격의 새 정당을 결속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허상(虛像)에 정국이 소용돌이치는 양상이었다.

여기에다가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을 주창해온 신중식 의원이 9월 21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그의 탈당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 의원은 탈당의 변에서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 “고 전 총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 협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고건 전 총리의 행보는 빨라질 것이며 내가 압박 카드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 전 총리가 정치행동 반경을 넓히면서 정계개편이라는 ‘빅 이슈’가 공론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다른 차기 대선주자를 압도하는, 고 전 총리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6일 한국사회연구소(KSOI)가 TNS에 의뢰한 조사에서 고 전 총리의 지지도는 35.1%였다. 2위권인 이명박 서울시장(15.1%)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12.9%)를 더블스코어로 앞섰다. 지난 9월 초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 조사에서도 고 전 총리는 20.0%, 박근혜 대표는 15.1%, 이명박 서울시장은 12.7%를 기록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고 전 총리가 탐색전에 나선 것이고 그 효과는 충분히 봤다”면서 “머지않은 시점에 고 전 총리를 위한 빨간 카페트 깔기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중식 의원도 “오는 연말·연초에 고 전 총리가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계개편 논쟁이 본격화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정계개편 논쟁은 정국의 불안정성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논쟁의 출발 지점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지역구도와 여소야대 정국 해소를 위해 대연정론을 제기하는 등 여권의 정국반전을 위한 움직임이 이미 표면화된 상태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세력의 이합집산 문제로 인식돼오던 정계개편 논쟁에 고건 전 총리가 끼어들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선 고 전 총리 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다는 추측성 분석까지 뒤따르면서 그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그의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고 전 총리는 여전히 잠재적 가능성에 머물러 있다. 현실정치에서 아직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본격적인 대선레이스에 진입한 뒤 특별한 선택이 없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고 전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을 지낸 분”이라고 전제하고 “그의 영입은 곧 대선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당이나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중식 의원도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은 거품 아니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면서 “그래서 신당과 민주당이 세력 확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력 크지만 현실에선 ‘글쎄’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고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미약한 고 전 총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신당 창당, 정치세력과 제휴 등 제한된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신당창당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은 “신당 창당이란 인기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고건발 정계개편’이 본격화하려면 내년 6월 지방선거라는 사선(死線)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지방선거에서 절묘한 황금 분할이 이뤄지지 않는 한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심각한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 지방선거 결과를 보기 전에는 각 정치세력이 성급하게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깨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고 전 총리가 이때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의 한 측근은 “고 전 총리는 정당 형태로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개헌과 남북문제 등 국가적 현안이 이슈화될 경우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민주당 이윤수 전 의원도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를 보고 정치에 뛰어든 게 아니다”면서 “지방선거 이후 정국과 정치판도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그러나 이런 상태로 10월은 넘기지 않을 것”이라면서 “고 전 총리도 내면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도 “고 전 총리의 정치 입문은 대선 4막극 중 1막이 시작되는 데 지나지 않는다”며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과 개헌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대선레이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금의 여론대로 열린우리당이 완패한다면 정치판은 또 요동치게 돼 있다”며 “아직 변수가 많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 상황에 고 전 총리가 정치적 행보를 가속하는 것은 개헌과 정계개편 논의가 조기에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연말까지 연정론 등 정치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내년 초 또 다른 노 대통령의 카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낳고 있다. 그것은 개헌론과 선거제도일 가능성이 높다. 고 전 총리의 때이른 정치행보는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너무 신중한 접근에 불만도

고 전 총리측은 시중에 회자되는 노 대통령의 사임 가능성에 대해 “노 대통령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면서도 “중대선거구제는 실패한 제도인 만큼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관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기국회에서 선거구제 타결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고 전 총리는 적어도 지방선거 전에는 정치판도에 변화가 오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시간벌기인 셈이다. 이용호 전 총리 공보비서관은 “당장 어느 당을 선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권 도전선언에 따른 부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태도에 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 ‘고건 중심의 정계개편론’에 가장 적극적인 신중식 의원은 “정치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침묵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3자연대론’과 ‘3자대결론’을 강력히 주장하는 인사다. 고건 전 총리가 한화갑 민주당 대표 그리고 심대평 충남지사와 연대해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3자연합 세력의 3후보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전제가 따른다. 신 의원은 “민주당 지지기반이 호남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충청권 신당과 연계되어 수도권까지 위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적 행보를 통해 대선가도를 헤쳐나간 ‘정몽준 모델’을 추구하는 ‘국민후보론’자들은 신 의원과 생각이 다르다. DJP연대와 ‘한(한화갑)-심(심대평)연대’의 실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의 한 측근은 “민주당은 이미 지리멸렬한 당이고 중부권 신당도 그 비전을 예측할 수 없다”고 ‘소연합’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그런 정당과의 연대효과를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도 “만일 지방선거에서 실패한다면 고 전 총리의 대선 가도에 암운이 드리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더욱이 고 전 총리의 지지도에는 적지 않은 거품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신 의원도 이 부분은 인정하고 있다. 그는 “그 때문에 고 전 총리가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중부권 신당에 합류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고 전 총리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건 전 총리는 그 자신이 갖는 위력을 어떻게 정치현실에 접목시킬지에 대한 대답을 아직까지 유보하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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